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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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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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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름이고 나는 제주에 있어 



성인 이후 여름의 기억은 줄곧 남쪽에 머물러 있다. 일본에서는 남쪽에 있는 섬인 큐슈에서 일 년을 보냈고 대만에도 타이난이라는 남쪽 작은 마을에 살았었다. 여름이 나를 부르는지 내가 여름을 부르는지. 여름만 되면 뜨거운 남쪽으로 떠나곤 하는 나였다. 한국에서도 여름만 되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넘게 제주에서 여름을 보냈다. 여름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여름과 나는 늘 가까이 있었다.

 

처음 제주로 떠나게 된 건 도망의 목적이 컸다.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말로 반 백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포토그래퍼에게 ‘영감을 찾으러 제주로 떠납니다.’라는 말은 그럴듯한 포장이 됐다. ‘제주’와 ‘여름’이라는 단어가 주는 마법같은 힘이 있었다.

 

마법의 힘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주의 7월은 ‘장마와 태풍’의 동의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제주공항에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마중나온 비바람의 거친 인사를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제주의 7월은 장마로 인해 해가 뜨는 날이 좀처럼 없다고 한다.

 

시골 동네에서의 밤은 이상하리만치 외로워서 복작복작한 도시에서의 삶이 그립기도 했다. 밤산책을 하다보면 바다 위를 부유하는 한치잡이 배가 별처럼 반짝 반짝 빛난다. 그 아름다운 광경이 내 외로움을 가중시켜 센치 농도가 짙어지는 날이면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곤 하는 나였다. 영감 찾아 떠난 애가 외롭다며 전화를 거는 모습에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난 그 웃음 덕에 외로움이 가시곤 했다.

 

한 달이 지나자 제주에서의 생활도 적응이 됐다. 7월이 끝나가면서 장마는 떠났고 쨍한 날들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보는 해가 반가워 뜨거운 뙤약볕이 따가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산책을 했다. 오름 오르기에 취미를 붙이기도 했는데 하나 둘 오르다보니 묘한 승부욕이 생겨 점차 영역을 넓혀가며 새로운 오름에 도전했다. 에너지가 남는 날엔 집 근처 하나로마트까지 걸어가기도 했는데 40여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마트에서 사먹는 붕어싸만코는 생각보다 더 대단한 맛이었다. 지는 놀을 바라보며 먹었던 붕어싸만코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주는 혼밥하기 애매한 식당이 많고 그마저도 일찍 문을 닫아서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손질해서 먹는 과정이 즐거웠다. 무더웠던 8월 중순엔 스무디볼에 흠뻑 빠져서 매일 과일을 갈았다. 오름에 가고 스무디볼을 만들어 먹고 노을을 구경하고 저녁엔 쏟아지는 별을 보며 친구들과 통화를 했다. 제주에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생기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마음이었다. 어 쩌면 내가 제주에서 얻고자한 것은 영감같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느지막한 여유였을지도 모른다.

 

마법은 여름이 끝나고 완전히 풀렸다. 나에겐 해야할 일이 있었고 일을 하고싶은 욕심도 있었다. 제주로 떠나기 전에는 잊고 있었던 것들이 여유를 되찾으니 다시금 하나둘 떠올랐다. 뜨거운 여름 아래에 한없이 게으르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의 한 해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했다.

 

기어코 여름 한가운데로 다이빙했던 지난 날들이 이해가 된다. 올여름 나는 또 다시 제주로 떠난다. 나에게 여름이라는 마법을 걸며.
















여름마다 머물고 있는 제주 집.

사촌언니가 조카들 방학을 맞이하면 육지로 떠나서

빈 집을 혼자 쓰고 있다.




















장마가 끝나고 오랜만에 해가 떴다.

신나서 괜히 발을 찍어본다.

 

















 

 

스무 번은 넘게 올랐던 '큰노꼬메 오름'.

친구가 놀러와서 기념샷을 남겨보았다. 


















큰 노꼬메 오름에 오르면 보이는 숲 풍경.



















필름카메라로 담아본 오름 정상.

안개 낀 풍경이 멋져서 30분은 혼자 구경하다 왔다.

















  

족은 노꼬메 오름에서 담아본 풍경.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 사진이다.


















 

오름의 정상엔 바람이 많이 분다.


















 

아마 저지오름이었던가?

너무 많은 오름을 올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홈메이드 스무디 볼!

바나나는 하나로마트에서 산 제주산 바나나.

















  

친구가 놀러와서 담아준 나.

제주 사는 사람같이 나와서 무척 좋아하는 사진이다.


















 

 

 

한새미 ㅣ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뮤직비디오 디렉터

@saemirang

 

하나씩 도전하고 있습니다.

자주 넘어지지만 금방 일어나는 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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