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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6.
여름 레시피 계절마다 지니고 있는 힘과 색은 분명하다. 여름은 투명 종이처럼 은은하게 비치는 부드러움을 자주 느끼게 해준다. #1 묵직한 여름의 기운은 도무지 이겨낼 힘이 생기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가만히 누워 힘을 채운다. 울렁거리는 속내를 진정시키고 일어나 시원한 물을 한 컵 마시면 내쉬는 호흡이 가벼워진다. 아삭한 오이는 말라있고 허전해진 영역의 필요를 돕는 귀중한 채소다. 부족하지 않도록 가득 채워두고 여름을 보낸다.#2 신발의 미끄럽고 눅눅한 느낌이 좋지 않아서 양말을 챙겨 신는 습관이 있다. 오늘은 어떤 색상이 좋을지 고민하는 선택의 순간은 하루의 시작을 유쾌하게 이끈다. 무척 뜨겁거나 비가 한참 내리는 날, 바닷가에 가야 하는 날이면 슬리퍼를 챙긴다.#3 밤의 고요함을 채워주는 풀벌레의 노래와 선풍기의 회전하는 얇은 소리를 좋아한다. 반복되는 소리는 어쩐지 풍부한 안정감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습도가 높은 밤이면 식물 친구들을 자는 방으로 데려와 함께 넉넉한 숨을 쉰다. 눈을 뜨면 빛이 내려앉은 잎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살피며 인사한다.#4 복숭아와 수박은 아쉽지 않도록 챙겨 먹는다. 여름밤이 찾아오면 숲과 산책을 하고 교회 근처의 가게에서 수박 주스를 마신다. 모기에 물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계단에 앉아 가만히 쉬거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우리에게 조용한 기쁨이 된다.#5 ‘나는 여름이 오길 기다립니다.' 길가의 문구가 간절해지는 계절을 보내고 있다. 막상 다가오면 또다시 이 계절이 그리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앙상하고 낮은 체온이 아닌 뜨거운 계절 속에서 힘껏 땀을 빼며 서늘한 바람을 마주하고 싶다. 무덥고 습한 여름의 어느 날, 유영국 화백의 그림들을 만나러 갔었다.눈과 마음이 시원해진다.벽에서 와닿는 공기가 흐물거리는 몸을 단단하게 해준다.동굴처럼 차가운 기운이 맴돌 때 얼음이 연상된다. 그리고 괜스레 힘이 난다.봄과 여름의 사이에서 식물 친구들을 넓은 곳에 옮겨준다.흙을 만지고 본연의 향을 맡는 순간은 깊은 만족을 준다.도무지 입맛을 찾을 수 없을 더위가 기습할 때는 매실 음료를 챙겨마신다.여름의 밤, 베를린의 숲 영상을 자주 틀었다.이야기가 없는 단조로운 맥락의 영상은 쉼을 준다.버스를 기다릴 때면 작은 빛의 움직임을 한참 바라본다.비를 맞는 것은 언제라도 피하고 싶지만 내리는 장면은 새로운 환기를 가져다준다.김예원 (@keem.yewon)작은 천국(@_smallheaven)에서 그림을 그리며, 평안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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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5.
여름을 좋아하세요? 맴맴- 찌르르 매미가 우는 계절,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빛의 계절! 여름이 시작되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건 바로 썸머 파워. 1년을 기다린 나의 사랑하는 계절, 여름. 그늘 사이로 햇빛을 피해 조심스레 걷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햇빛을 따라 씩씩하게 걷는다.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한 손에 든 채로. 유독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뜨거운 햇빛 속을 걸을 때면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따듯하게 날 감싸주는 여름의 햇살! 때때로 그런 나도 질색할 만큼 뜨거워 미워질 때도 있지만, 여름은 잘못이 없다. 그저 묵묵히 1년을 기다린 자신의 시간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을 뿐. 그래서일까 여름이 더워서 싫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여름이니까 당연히 더운 건데 말이다. 반대로 여름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가슴이 뛸 만큼 반갑다. 같은 계절을 좋아한다는 건 왠지 모르게 로맨틱하게 느껴져, 그 사람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름이 오면 나처럼 떠나고 싶어지는 지, 여름마다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는지, 나처럼 쏟아지는 햇빛 속을 걷는 걸 좋아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뜻하는 단어(코모레비こもれび)가 있다는 걸 아는지! 당신도 나와 같이 손에 땀이 차도, 꼭 손을 잡고 함께 여름밤을 걷고 싶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 이 수많은 궁금증을 뒤로 하고 시치미를 뗀 얼굴로 던지는 말,“여름을 좋아하세요?”인도네시아에서 보낸 첫 여름의 풍경,낯설지만 다정했던 순간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일본에 도착한 첫날, 스시를 먹으러 가던 버스 창 밖 풍경은 여름밤 그 자체였다.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더욱 설렜던 여행 첫 날.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こもれび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내 든든 적립노트에 적립한 단어! 내가 사랑하는 여름과일과 쫄면.더운 계절의 감각을 깨워줄 새콤한 여름의 맛. 영화 수업을 듣기 위해 보낸 여름이 있었다.수업 전 늘 한 시간 일찍 나와 나만의 아지트로 향했다 좋아하는 책 한권과 아이스 커피, 충분한 행복!지난 여름 혼자 무계획으로 강릉여행을 떠났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주문한 메론소다의 맛은 밍밍하다가도 톡쏘는 낯선 맛. 그 여행이 그랬다.아무것도 잔잔한 여행이었는데 코가 찡-했다. 그림같던 여름의 제주 나는 어릴 적부터 편한 옷차림을 좋아했다. 특히 여름이면 하와이안 셔츠를 포기할 수 없다. 넓은 셔츠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참 좋다! 나만의 꿀타임, 그건 바로 하루의 일과 끝에 좋아하는 일드보기! 2년 전 여름, 운명처럼 만난 <콩트가 시작된다>. 최애 계절 + 최애 일드 = 꿀조합. 뜨거운 눈물을 흘린 여름밤의 기억. 여름이면 떠오르는 <나기의 휴식> 속 나기.그녀처럼 나에겐 나만의 휴식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여름이면 늘 떠나고 싶어지는 이유가.여름프로젝트 : 나를 찾아가는 여정 <난 아라요> 나기의 휴식 속 나기처럼, 나만의 여정을 보낸 여름날의 기록들을 짧은 숏필름으로 제작했다. (유튜브 채널 '여름비누'에서 감상가능)<사랑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 내가 좋아하는 여름, 썸머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좋아하는 것들을 차곡 차곡 모아 용기를 내길 잘했어,내가 썸머라고 불릴 줄이야!가족 여름캠핑에서 만든 수박티셔츠는 어느새 나의 최애 여름티셔츠가 되었다. (뒤에는 커다란 수박, 앞에서는 'She is Summer'라고 쓰여있음)썸머(고아라) / 배우, 작가 @shy_ara 영화 속 다양한 삶을 연기하고 있지만, 언제나 가장 궁금하고 응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좋아하는 마음을 데굴데굴 굴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에세이 <사랑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 출간, 유튜브 <여름비누>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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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4.
1월, 여름의 실재 새로운 한 해가 찾아오면 늘 그랬듯이 요란하게 삶을 지탱한다. 2023년의 1월이 찾아오면 서 나의 정확한 20대의 중반도 함께 찾아왔다. 겉으로는 무뚝뚝했지만,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요란을 떨고 있었다. 불안함과 외로움, 막막함과 허망함, 이 생기 없는 단어들 말이다. 이럴 때 마다 나는 습관처럼 떠날 채비를 했다. 운이 좋게도 1월에는 예정된 여행이 있었다. 한국이 영하 20도로 고통스러운 추위에 겪고 있을 1월의 어느 날, 나는 뉴질랜드에 도착 했다. 한 번도 가보고 싶다 생각한 적 없는 이곳에 온 이유는 엄마의 마음이 이곳에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에 별다른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마음 하나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보다 더 뜨거웠고 동시에 더 시원했다. 내가 알고 있던 여름의 축축함은 이곳에서 조금의 고개도 내밀지 못했다. 여름이라고 다 같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1월의 여름도, 뉴질랜드의 여름도 처음 느껴보는 여름이었다. 여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생기 있지만, 이곳에서의 여름은 더욱 생기로 가득했다. 2000년 된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나 차 안에서 수 시간 동안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 두 손 꼭 잡고 산책을 하던 동성의 노부부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과 끝없이 펼쳐진 은하수를 바라보 며 눈물을 삼키는 일. 저녁 10시까지 떠있는 해를 어색해하던 일과 빙하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일. 이토록 환한 적 없었던 엄마의 표정을 목격하는 일 그리고 점점 생기로 가득차 있는 나의 마 음을 느끼는 일. 나는 매일 다른 길을 걷고, 다른 마음을 받고, 다른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고, 다른 호수 색을 보고, 다른 별을 보고, 다른 여름을 경험하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불가항력적인 생기는 나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 순간이 꿈인 것 같았 지만 모든 것들이 너무나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불현듯 수면위로 떠오른 엄마의 마음으로 시작된 뉴질랜드의 여행은 내게 평생 잊지 못 할 선물이 되었다. 여름의 실재. 꺼내 먹는 여름의 맛몸으로 느끼는 여름은 뜨겁지만,마음으로 느끼는 여름은 몹시 시원하다.꽃보다 아름다웠던 장면.운이 좋게도 나의 카메라에, 그들의 카메라에 이 순간을 담을 수 있었다.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본 창 밖 풍경.나를 숨죽이게 하는 것들.LEE KYUNG JA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그녀에게 물려 받은 이 필름 카메라로 그녀의 가장 어린 시절을 남겨 주었다. 그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뒷모습에도 잔뜩 묻어 있는 행복.호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구름 그림자.여름의 자국들이 좋다.진해지는 주근깨와 그을려지는 피부 같은 것들.빙하의 조각들과 만년설. 석회수가 섞여 있어서 이런 색을 띈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정말 어마 어마하게 멋있다.표현할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기 전에 본능적으로 감탄사만 나온다.2023년 1월의 해수.신해수 | 움직이는 사람@onda.haesu 자유롭게 춤추며 마음대로 표현합니다. 겁 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며 사랑합니다.제가 원하는 세상은 보통의 낭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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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3.
36도에 육박하던 런던의 썸머타임, 비로소 사랑살을 쪼는 듯한 따가운 햇살, 진을 빼놓는 무더운 밤. 불쾌함의 극치로 우리를 초대하는 장마와 예측할 수 없어 무력하게 만드는 소나기. 내게 여름은 기다려본 적 없는 계절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건너뛰기를 하고 싶은 계절, 여름이 가장 두려웠던 이유는 무더위와 불쾌감도 아닌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이었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 아니 무엇이든 좋으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 사춘기처럼 한철이면 지나가고 사라져야 할 잠 못 드는 밤들이 여름이면 늘 현재진행형이 되어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여름이 오면 삶의 반경을 줄이며 감정의 자극을 피하려 애썼다. 여름밤의 한강, 한낮의 피크닉, 맥주와 영화. 낭만과 멀어진 여름은 일정한 심박도를 유지하며 업무의 성장을 도모하기도 했으니 이만하면 꽤 괜찮은 결단이었다고 믿었다. 우연히, 36도에 육박하는 런던에 닿기 전까지는.늘 런던에 닿기를 꿈꿨지만, 사랑했던 영화와 음악의 고향인 그곳에 처음 발을 내딛는 게 신발 밑창이 녹을 것만 같은 여름의 한가운데가 될 줄은 몰랐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7월, 유럽은 썸머타임이었다. 오후 5시에 더위가 절정에 다다르고 저녁 9시가 돼서야 조금씩 어두워지는 거리를 거닐며 한 겹 두 겹 옷을 벗고 바닥난 물통을 몇 번이나 갈아치웠다. 긴머리를 닭살스러운 양갈래로 땋아본 것도, 무릎 위로 훌쩍 올라오는 짧은 원피스를 입어본 것도, 발등 위에 선크림을 발라본 것도 그 여름이 처음이었다. 숨이 넘어갈 듯 더운 타국의 구석구석을 돌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빠르게 뛰는 심장 템포에 맞춰서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는 것과 뜨거운 햇살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어둑해지는 밤거리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며 열을 식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밖을 나섰다. 여름의 여름, 더위 속 더위를 헤매며 땀을 쏟고 때로는 울음을 터뜨리며 낯선 나의 에너지를 발견하는 보름이 지나고 내게 남겨진 건 까맣게 탄 어깨와 등허리,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이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여름은 여전히 남아있던 7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그 두근거림을 잠재우는 대신 만끽하기로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알쏭달쏭한 마음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런던도 마르세유도 아닌 서울의 작은 동네를 부지런히 걸었다. 여름밤의 한강과 한낮의 피크닉과 맥주와 영화도 되찾았다. 서른 번째 여름을 지나고 나서야, 여름을 기다리게 됐다.나의 예측할 수 없는 날의 기분 좋은 핑계, 여름. 어서 와. 썸머타임의 환한 밤은 그 열기가 더욱 길었다.환한 오전에 누렸던 호사.윔블던의 부엌 빛은 여전히 아른거린다.런던 카니자로 파크에서 첫 메모."바람은 소리내지 않는다."노팅힐 서점에서 노팅힐의 애나처럼 가슴이 뛰었다.마르세유. 뜨거운 공기 중에 마셨던 뜨거운 라떼의 맛납작복숭아로 탈진을 피했던 그 해 여름런던에서 펼쳤던 내 책 이름처럼,<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타국에서 꽃을 사는 일은 묘한 안정을 준다.마르세유의 해변은 다시 가지 않을 것.그럼에도 아름다웠다.함께 뜨거운 유럽을 거닐어 준 나의 친구,서정가랑비메이커 / 에세이스트, 문장과장면들 대표@garangbimaker매일 쓰고 이따금 책을 펴낸다.영화와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아주 오래전에>에서는 애나로 불린다.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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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2.
삶의 시작, 여름# 삶의 시작, 여름내 생일 7월 14일, 우리 엄마 생일 6월12일. 음력으로 6월 12일은 1989년 그해에 7월 14일이었다. 한여름 뙤약볕이 쬐는 날, 우리 엄마는 당신의 생일에 나를 낳으셨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9년 8월 8일, 한여름에 나도 우리 첫째 아이를 낳았다. 나를 낳은 엄마도, 나도 또 나의 자녀까지 여름으로 시작한 인생이어설까 마치 계절에 고향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지 연중 여름이 돌아올 때면 어쩐지 제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가장 뜨겁고 에너지 넘치는 계절임에도 한여름의 중심에는 어딘가 모를 포근한 설렘이 가득하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집 뒷산의 아카시아 향기도, 마치 빨래가 바싹 햇빛에 말려진 듯한 여름밤의 냄새도 모두 설렌다.# 살고 싶은 여름의 도설레는 여름을 더 만끽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던 날이 생각난다. 어쩌면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이름은 이 여름이 주는 사랑스러운 날씨 덕분이 아닐까. 쾌적한 바람에 뜨거운 태양이 주는 쾌청한 이 도시는 여름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도시이다. 그리고 여행으로 누구에게나 추천하기도 하고 내가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역시 로스앤젤레스이다. 이유야 많지만 가장 큰 이유로 날씨를 꼽을 만큼 여름이 주는 에너지를 가득히 누리고 싶다. 언젠간 꼭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를 수 있기를.# 여름처럼 살아가기여름에 태어나서일지 나의 기질은 여름과 닮아있다. 밝고 진취적이며 생동감 있는 삶을 사랑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결국 나답게 산다는 건 여름처럼 살아간다는 게 아닐지 생각해 본다. 때로는 한 여름 태양처럼 뜨겁게, 때로는 장맛비처럼 시원하게 또 여름날의 방학이나 휴가처럼 가끔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떠나 완전한 휴식도 즐기며 딱 그렇게 여름처럼 살아가고 싶다.2019년 8월 여름, 첫 아이를 만나고 조리원에서아무도 없는 여름날의 바다.정유와 나.첫 아이가 돌 쯤 여름이 찾아왔고,엄마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사막의 나무 조슈아 트리를 바라보며아이가 생긴다면 꼭 이곳에 같이 올거라 다짐했다.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법.사랑하는 여름밤의 수영해는 뜨겁고 바람은 시원한 이 도시의 계절은풀의 색이 제법 고상하다.여름 공기, 돌, 나무, 하얀 천여름날의 반다나와 저물어가는 해여름 날 가장 사랑하는 도시,팜스프링스팜스프링스에서 해야하는 일 : 뜨겁고 뜨거운 이 날씨를 최대한 만끽하는 것박서윤 / 브랜드 디렉터, 엄마두 브랜드의 디렉터,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ncssry-official @scienceandbalance @parkseo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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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1.
이상한 계절늘 그랬듯, 난 그 뜨거운 계절이 좋았던 것 같다.발 밑으로 한동안 안 보이던 개미들이 보이고,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답고 따뜻한 자연이 주는 빛 아래 낮잠을 자는 고양이들. 하얗던 온 세상이 초록빛으로 물들고, 꽃들 주위엔 벌들이 작은 소리를 내며 열심히 일을 한다. 누구보다 이 여름을 가장 잘 즐기고 있는 고양이잔잔한 노래가 담겨있던 내 플레이리스트엔 시원한 노래들이 줄을 잇고, 그늘이 진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여행 온 기분이 든다. 눈 앞에 바다를 두고 있지 않아도 바다가 그려지고, 나무의 초록 잎이 살랑살랑 아름답게 춤을 춘다. 비어 있던 냉장고엔 아이스크림이 하나 둘 채워지고, 맥주 한 캔만 있다면 꼭 어디를 가지 않아도 좋은 밤. 여름이 우리 눈에 보인다면 바다의 모습이지 않을까,이토록 찬란하고 눈부신 계절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단연코 바다가 1등인 것 같다가벼운 동네 한 바퀴 산책에도 땀이 나는 계절.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나오면 엄마가 씻어준 자두가 나를 반긴다. 열심히 회전하는 선풍기를 벗 삼아 마루 바닥에 앉아 자두의 껍질을 벗긴다. 그러곤, 당물이 뚝뚝 흐르는 자두를 얼른 입 안으로 넣는다. 시큼한 씨를 빼내어 차곡차곡 쟁반에 쌓아 올린다. ‘아, 여름이다.’이상하고 아름다운 이 계절은나의 기억을 왜곡해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만든다.여름의 친구백그라운드 뮤직은 매미의 울음소리. 암막 커튼 그 틈새로 들어오는 바깥의 열기. 컴퓨터 속 화면이 이 방의 조명이 되고,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는 매미와 함께 여름을 노래한다. 새로 깐 시원한 침대 매트와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나. 아 이 여름 느낌 질리지가 않네.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여름의 특권.이 이상한 계절에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어김없이 찾아보고,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OST를 당연하게 찾아 듣는다. 나의 여름정현희 | 패션 마케터@nuyhc패션 브랜드 PR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번외로 글도 쓰고, 영상 작업도 한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요.여름의 해처럼, 긴 시간 강렬하게 빛나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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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0.
Summer Ritual여름 리추얼#1 복숭아여름이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 과일 가게에 가서 복숭아를 산다. 큼직하고 향긋한 걸로. 흐르는 물에 껍질 털을 훌훌 씻어내고 가지런히 깎아 접시에 올린다. 한입 가득 베어 무는 여름의 맛. 풍부한 과즙에서 새어 나오는 복숭아 향은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가장 직관적인 존재다. 요즘은 시절이 좋아 수박도 제철 없이 나오지만 복숭아는 예외다. 그러니까 ‘여름 한정 특수 리미티드 에디션’. 계절이 가기 전 부지런히 탐할 제철의 맛이다. #2 언어의 정원과 맥주무더워질 즘엔 영화 <언어의 정원>을 본다. 매년 한 번씩 보니까 네다섯 번은 본 셈인데 볼 때마다 새롭다. 스토리보다 도입부에 나오는 여름 풍경이 좋다. 우중충한 하늘, 연못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의 파장, 비 온 뒤 반짝이는 빌딩 유리창, 분주한 지하철 풍경 그리고 밀려드는 여름의 습도. 곧바로 냉장고에 차게 식혀 둔 맥주를 꺼내 든다. 주인공은 비 오는 신주쿠 공원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여러 번 따고 나는 러닝 타임 내내 맥주를 홀짝인다. 영화가 끝날 무렵 이 여름의 리추얼도 끝난다.#여름이 좋은 이유무더위가 절정을 찍을 때면 바다에 나간다. 화려한 비치타월을 깔아두고 하루 종일 해변에서 논다. 저녁때면 그을린 얼굴이 신경 쓰이지만 곧 ‘뭐 어때’ 싶다. 기초 제품만 탄탄히 발라 두면 피부도 회복력이 빨라진다. 매일 하는 습관이 나를 만드는 것처럼, 선크림이 피부 퀄리티를 바꾼다는 것. 십여 년 동안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이다. 가끔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 청소 후 풍덩, 해 질 무렵 일을 끝내놓고 풍덩. 그러다 운 좋게 전복이나 문어도 잡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 여름이 좋은 이유는 그거다. 긴 해를 핑계 삼아 어디든 쏘다니고 바다를 헤엄칠 수 있는 계절이라는 것. 언젠가 여름이 긴 오키나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현실은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사무실에서 원고를 쓴다.엄마가 주말농장에서 거둬들인 수확물들. 농장에서 딴 옥수수와 시원한 보리차탐스러운 복숭아.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제철의 맛.여름휴가에는 가족들과 주말농장 앞 계곡에테이블을 펴고 맥주를 마셨다.해변에서 필수인 비치타월.고성의 앞바다와 이국의 섬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모래를 툭툭 털어 텐트 옆에 널어두었다.여름이 좋은 이유.무더위를 피해 언제든 바다에 풍덩 뛰어들 수 있다는 것.비오는 도쿄, 시부야의 여름. 무덥고 습한 날이었다.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해바라기를 만났다. 하루키는 ‘하루가 저물 무렵 마시는 아주 차가운 맥주 한 병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라고 했다.무더운 여름밤 마시는 한 잔의 맥주에 비견할 게 있을까.어느 여름 만든 잡지의 한 페이지 중, 사진은 동료 김한나 실장이 찍었다.지난여름 도전한 것 중 하나.실을 총으로 쏘아 완성하는 터프팅 공예.오랜만에 손으로 완성하는 감각을 느꼈다.이소진 ㅣ 디자인프레스 수석 에디터@esoev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든다.언젠가 여름이 긴 오키나와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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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9.
잔향 같은 계절, 찰나의 여름여름을 생각하면 국내외 여행지들에서 보낸 실로 다양했던 여름을 마주하며 보낸 순간들이 그 날 내가 든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이미지형의 마인드 맵처럼 떠오른다. 여행을 갈 때마다 가장 깊이 있고 다양한 변주를 느낄 수 있는 계절은 단연 나에겐 여름이기에, 나를 더 알아간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계절도 여름이기에 나에겐 여름과 여행에 대한 의미가 남다른 듯 하다.여름은 햇빛과 그림자가 안과 밖의 틈으로 들어오는 햇볕인 볕뉘가 제일 예쁜 계절, 골든아워와 블루아워가 제일 예쁜 계절이다. 공원 그리고 숲과 산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마음에 여유로움을 충전해줄 초록색이 얼마나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지. 마지막으로는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이 가장 예쁜 계절이다. 한국은 한창 여름이지만, 여행을 다닌 곳들은 가을과 겨울인 곳들도 많았어서인지 나의 여름은 사계절의 모습이 다 녹아있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여름에 떠난 사진들만 봐도 내가 항상 바라고 원하는 모습들이 가득 담겨 있는 듯하다.내가 찍은 여행 사진들로 여행 엽서를 만들었던 5년 전과 비교해 지금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여행과 관련된 저마다의 기록물을 만들며 추억하는 것 같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리고 싶어서 엽서로, 포스터로 만들고 있다. 좋은 건 같이 나누랬다고 공유하고 싶은 여행지에서의 순간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계속 그 순간들을 쌓기 위해 짧거나 긴 여행들을 항상 꿈꾸며 지내는 것 같다.MBTI 과몰입러인 INFJ로서, 여행할 땐 무조건 P 성향이 강하다. (그래도 대충 가면 좋을 듯한 곳들을 생각하긴 한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계속 J가 나오는 것 같기도.) 아무튼,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정이 포함된 여행을 좋아한다. 지도를 보지 않고 좁은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곳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해가 저무는 시간에는 특히나 담고 싶은 사진들이 많아져서 길을 가다 서다를 자유롭게 정하고 ‘갑자기’, ‘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나는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서투른 편이다. 그래서 여행을 갈때마다 뭔가 하고싶은 말들이 마치 표현되고 있는 듯한 풍경을 마주할 때 깊은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여유로움이 생기고 마음이 말랑해지고 유연해진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할때 좋아하는지 나와 대화하는 기분이 많이 드는데, 우연히 보게 된 책 ‘기록의 쓸모’에서 여행은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다.’라는 구절이 마치 내 일기장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많이 나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통해 많이 남기고 표현하고 또 나누고 싶다. Sefton Park, Liverpool큰 규모의 음악 축제 'The Africa Oye Festival'를 가서는사진첩에 가득한 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의 모습.오스트리아 빈에 머물다 갑자기 결정한 잘츠부르크행 열차 안.굵직한 계획짜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아침에 일어나면 루틴이었던 정원과 카라반 바라보기.할머니집 미니 수영장 개시하던 날.아이폰xs로도 가까이 물방울들을 많이 찍을 수 있어서 재밌었다.가장 가까이 봤던 쌍 무지개.아직도 영상을 보면 너무 설렌다.Retiro Park, Madrid.마드리드의 최애 장소.그늘 밑에 있으면 40도 같지 않았다.Kleines Cafe, Vienna(Wien)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20번도 넘게 봤다.그래서 영화에서 나온 곳들을 따라가보기가 여행의 목적이었다.Port Vell, Barcelona앞으로도 꾸준히 나만의 여행 사진 기록물을 만들고,매일 여행을 꿈꾸면서 살고싶다.나의 첫번째 엽서 시리즈.이기란 ㅣ 브랜드 마케터브랜드 마케터 이기란(@akiraan) 또는,아마추어 여행 사진가를 꿈꾸는 키란 (@kiranpic_)이 두 사이 중간 어딘가를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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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8.
내 안의 여름서늘하고 무더운 시간. 여름은 기쁘고 활기찬, 슬프면서 나른한 에너지를 함께 들고 찾아온다. 여름의 해는 길어서 더워도 걷게 하고 힘을 쭉 빼고 앉아만 있어도 살게 한다. 여름의 나는 물을 먹고 살아난 식물 같다고 느낀다. 얇은 옷차림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걷거나 햇빛 아래 앉아있으면 일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하고 이때는 일종의 개운한 해방감도 느낄 수 있다. 기억 속에서 이미 여러 번 미화된 쨍쨍한 날 뜨거운 모래 밟으며 따뜻한 바다에서 하는 물놀이도 그 계절에만 즐길 수 있고,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물이 송골송골 맺힌 시원한 음료를 가장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알베르카뮈는 내 안의 정복되지 않는 여름에 대하여 말했다. 내 안에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불굴의 여름이 있다고, 그 여름은 우리가 좋아하지만 오랫동안 교류가 끊어진 친구와 같다고, 그 여름은 우리가 인생에서 배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카뮈는 여름이 내 안의 선한 에너지고 내가 살면서 받은 사랑과 미소, 고요라 말한다. 겨울에도 그리고 언제라도 푸르게 살아갈 여름처럼 귀한 에너지가 나를 이루고 있다. 가을-겨울-봄을 지나 항상 돌아오리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계절이다. 이 계절의 나는 나를 온전히 생각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며, 잠시 나를 떠나있더라도 여전히 남아 단단하게 버티고 인내할 힘을 준다. 가을을 맞이하는 문턱에 서 있자면 꽤 아쉬운 마음이 든다. 좀 더 잡아두고 기억하고자 글과 사진을 남겨본다. 매년 여름은 더욱 그렇다. 어떤 여름은 영원히 있다.여행 중에 만나는 바다 수영은 놓칠 수 없다.물놀이 후 모래에 누워있을 때 잠이 잘 오는 건 어느 바다에서나 똑같다.여름에는 나무를 자세히 올려다보게 된다.분수대와 바라보는 아이들, 여름의 구심력여름이 되면 초록으로 회복하는 나무들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린 잎을 가진 나무여름 음식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여름에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이서진 ㅣ 콘텐츠 기획자@jineeee___좋은 콘텐츠란 무엇인지 고민하며지금은 리빙 브랜드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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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7.
제철을 누리는 삶제철을 누리는 삶. 그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 생활하는 동안 그 행복을 누리긴 쉽지 않았다. 사무실의 겨울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히터로 오히려 더웠고, 여름에는 에어컨 때문에 너무 추웠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눈치채지 못해 철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실수도 자주 했다. 출퇴근 시간에만 짧게 느낄 수 있는 계절의 온도는 아쉬웠고 마치 지구 반대편에 사는 듯 기분도 이상했다. 그래도 사무실은 겨울에는 대체로 안온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곳이었다. 직장인 9년 차에 아이가 생겼다. 육아휴직을 했고 매일매일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길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미세한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어제는 오늘과 달랐고 그 변화들이 모여 계절이 바뀌고 한해를 보냈다. 아이의 첫 봄, 첫 여름, 첫 가을, 첫 겨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계절이 없었다. 이제는 계절에 맞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30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여름을 기다려본 적이 있었을까. 수영에 관련된 브랜드를 준비하는 동안 올해 여름을 유독 기다렸다. 얼마나 제대로 이 계절을 즐길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상상과 달리 식당 주인이 제때 끼니를 못 챙기는 것처럼 나도 지난 여름은 집과 공장, 작업실만 오가며 바삐 지냈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출퇴근길이 짧아져 남은 시간에 아침 수영을 했다. 볕이 좋으면 숲에서 점심을 먹었고 머리가 무거우면 언제든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알알이 꽉 차오른 옥수수도 실컷 먹었다. 사실 제철을 누리는 일은 대단한 걸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퇴근길에 사가는 수박 한 통에도 제철은 담겨 있다. 어느 때보다 뜨겁게 보낸 여름이 갔다. 여름에만 열리는 한강 수영장의 물이 빠졌고,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 후 몇 번의 절기가 더 지나 이제는 팔에 닿은 바람이 가을과 겨울의 사이에 있음을 알려준다. 아쉽지만 이제 반팔 소매 옷들은 넣어둬야지. 올여름, 참 뜨겁게 살아서 잘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 또 만나자 여름아.참 열심히 살았던 2022년 여름.동대문 종합시장에서기다리던 첫 샘플이 세상에 나왔다.샘플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올림픽 수영장으로 향했다.바쁜 일상에서 틈틈이 느낌 여름.딸 아이가 좋아하는 옥수수, 빗 소리 들으며 일했던 사무실,점심 시간 서울숲 산책.레디투킥 첫 화보촬영.레디투킥 뮤즈 예셈과 송이가 수박을 사이에 두고 장난을 치고 있다.콜링북스와 함께 한 레디투킥 팝업 현장출근 전에 아침수영을 간다.아침을 기분 좋게 깨우는 방법한강 수영장을 바라만 보다가, 끝나기 전에 겨우 다녀왔다.수영 끝나고 먹는 라면과 어묵은 꿀맛!지난 여름 바쁜 나를 대신해 독박 육아를 해준 남편과기다려준 딸에게 감사를 전한다.양수현 ㅣ 레디투킥 디렉터@yangsoois이제 막 사장도 되고 엄마도 되었습니다제철을 누리며 사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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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6.
배반의 여름여름엔 결코 실망이 없었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 탓에 여름을 참 좋아했다. 넌 참 여름 같아, 라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좋았다. 눈부신 녹음, 그 해의 휴가를 구상하는 일의 즐거움부터 아무 날도 아닌 날 고궁 옆을 거니는 한밤의 산책까지. 어느 것 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여름은 ‘확실한 행복’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올해의 여름을 떠올린다. 다가오는 것보다 떠나보낸 것들이 유난히 많던 여름이었다. 끈적한 온기로 인내심을 시험하지만 이내 탐스런 행복을 안겨주던 나의 계절에 조금은 배신감마저 들던 여름이었다. 어떤 여름,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설렌다’고 하는 말버릇이 있다고 했다. 설레는 음식, 설레는 산책길, 설레는 작품. 그때의 나에겐 설레는 일들이 참 많았지. 어떤 이는 나 덕분에 가장 싫어하던 계절이 좋아졌다고 했다. 숨이 차고 땀이 나더라도 이 계절이라 가능한 일들이 이제는 기다려진다고. 해가 갈수록 끓는 점은 높아진다. 가슴 뛰던 계절 앞에서도 침착한 어른이 되어간다. 잘 감추고 유보하는 일이 많아졌다. 마음이 들끓는 일들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올해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여름의 배반처럼. 그러나 겨울을 지나 내년 또다시 돌아올 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건 다 지나간 여름 덕분일 테다. 어린 그 해의 여름이 안겨주던 열기를 기억하는 나는 달군 숨으로 나를 빨아들이는 더위에 다시 몸을 맡길 것이다. 어쩌면 한 번 달궈진 팬이 더 빨리 달아오르듯 더 정열적으로, 오래 널 담을지도 모른다. 증발하지 않는 더 느긋해진 마음으로 담을 것이다. 나를 배반하는 여름이라 할지라도기꺼이 설레며 나의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여름은 내가 가장 많이 움직이는 계절.출근하는 날에도 날이 좋은 날이면 이른 아침 산책을 간다.좋아하는 여름의 녹음추위를 싫어하지만 북유럽은 엄청 좋아한다.8년만에 다시 찾은 스톡홀름의 이번 여름운이 좋게 친구 니나의 집에 여행 내내 머물 수 있었다.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꽃들좋은 전시는 항상 설레지만, 이번 여름 공간이 좋았던디자이너 jiyongkim의 전시Le temps de cerises, 체리 시준을 이르는 말이 있을 정도로탐스럽고 맛있는 프랑스 시장의 체리좋아하는 과일이 가득한 여름의 아침을 준비할 때면 위트가 많아진다.정예하 ㅣ 브랜드 기획자, 카피라이터 @yehaeo패션회사를 다니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여러 브랜드를 위해컨셉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한다.하지만 역시, 시키지 않은 일이 가장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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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5.
여름의 작업실 2020년 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가구를 옮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하고도 반이 지났다니. 이전 집과는 다르게 나만의 공간인 ‘작업실’을 꾸렸다. 이전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그것이 업무이든 개인 작업이든 이방 저방 옮겨 다니며 마음이 편해지는 곳에 주저앉아 그리곤 했는데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보헤미안의 감성으로 그리니 항상 어딘가 정리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름의 낭만은 있었지.) 그래서 항상 이사 가면 꼭 마음에 쏙 드는 작업실을 갖겠노라 다짐했더랬다. 작업실을 위해 가장 먼저 고민했던 건 책상이었는데 이것은 기필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빈티지 가구여야만 했다. 반짝반짝한 새 책상은 흰 도화지를 마주할 때의 중압감을 몇 배는 더 늘려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빈티지 가구의 인기가 높아져 가고 있었던 때라 그리 어렵지 않게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취향을 한데 모으고 보니 작업실 가구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물기를 머금은 여름이 오면 묵직한 나무 냄새가 방 안을 채운다. 그림을 그리려 책상에 앉으면 살결에 맞닿은 눅눅한 나뭇결에 마음이 노곤해져 더 이상 흰 도화지가 두렵지 않다. 작업 공간을 포함한 집 곳곳엔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해온 식물들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평균 4-5년을 함게 해온 친구들이라 잎사귀만 봐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사이랄까. 이들이 가장 수다스러워질 때는 역시 여름이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너나 할 거 없이 앞다퉈 작고 반짝이는 밝은 잎을 내보인다. 아이고 애썼다 하며 하나씩 바라봐 주면 하루가 훌쩍 간다. 혹여 잎이 지거나 웃자라더라도 식물을 해치는 병이 아니라면 그들의 뜻대로 내버려 둔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들은 상인들이 소위 말하는 b급 형태의 모습들로 내 곁에 있다. 내 눈엔 다 예뻐라고 속삭이며 여름의 생기를 담아 넣는다.아마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건 아빠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은데 아빠는 항상 화초를 가꾸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신다. 후드둑 비가 쏟아지면 화초들 물 먹여야 한다며, 자연에서 오는 물이 건강하고 좋다며 아픈 허리는 아랑곳 않고 커다란 화분을 모두 밖으로 내놓으신다. ‘나는 아빠를 닮아서 집에 식물이 많은 거 같아’라고 아빠에게 이야기 하면 잘 올라가지 않던 입꼬리를 씰룩이시며 당신의 취향을 닮아가는 딸이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얼굴이다. 부녀간의 짧은 대화가 끝나면 나는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서 눅눅한 나무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아빠의 얼굴을 식물과 함께 도화지에 담아낸다. 여린 잎이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나무가 곁에 있어주면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린 그림.작업실 너머로 보이는 여름에게 시선을 자꾸만 빼앗긴다.아마도 7-80년대 생산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나의 빈티지 가구들.테이블 위로 세월의 얼룩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 책상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다 쓴 물감들은 어쩐지 버릴 수가 없다.작업실에 있는 대부분의 툴들은 내가 직접 만든 것들로 사용하고 있다.내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 좋다.지난 반년 동안 취미로 도예를 배웠는데 그때 만든 것들이다.세탁실 한켠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뒀다.일주일에 한번 집에 있는 초록 친구들을 한데 모아놓고 안부를 묻는다.여름이 깊어질수록 내 도화지 위엔수많은 햇살과 식물들이 새겨진다. 훌륭한 모델들.김소연 | 일러스트레이터 kimu@kimu_so 일상을 그림으로 기억합니다.그림을 그릴수록 취향이 깊어짐을 느낍니다.편안하고 안전함을 느끼며 오래도록 그리고 싶습니다.Click!소연 섬머필리아님의 섬머 플레이리스트"토닥토닥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