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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여름 



엄마의 얼굴이 보기 싫어 자꾸만 고개를 돌렸다. 여름의 열기와 자외선에 얼굴이 많이 상해 부쩍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름 내내 커다란 온실에서 파프리카와 방울 토마토를 따는 일을 했다. 그런 엄마가 나를 만나려고 잠시 짬을 내어 제주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자그마한 캐리어를 끌고 오피스텔 밑에 도착한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흠칫 놀랐다. 두달 전 제주에 내려갔을 때 본 엄마의 얼굴이 아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윤없이 퀭하고 주름이 부쩍 깊어진 데다 머리카락은 염색을 안 해 희끗희끗했다. 한여름을 지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가 내 집에 머무른 주말 동안 나는 내내 퉁명스러웠다. 묻고 싶은게 많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냐는 걱정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상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눈물을 쏟아내는 대신 못된 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진짜 마음을 숨기기 위한 얕은 수 였다. 엄마는 그런 내게 복숭아를 한 봉지 사주며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저녁 바람이 선선해지는 늦여름이었다.

 

"너는 고등학생 때랑 달라진 게 없네."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가려는데 엄마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엄마가 한 말은 그것뿐이지만 그 뒤에는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라는 말이 숨어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종종 내가 모르는 엄마의 여름이 어땠을지 상상하곤 한다. 까무잡잡하고 생기 넘치고 젊은 엄마의 얼굴을. 그녀는 그런 얼굴을 하고서 어린 나를 토닥이며 밤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는 남편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엄마의 여름이 내 여름만큼 제멋대로고 철없고 방탕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진다.

 

엄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들이켜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속이 시원해 진다고 했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며느리가 되느라 애써 자기 자신을 누르며 젊은 날을 보낸 사람의 감상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꼭 세계 3대 폭포를 보러 떠나고 싶다고도 했다. 그 사람의 꿈. 나는 엄마를 빅토리아 폭포로, 이과수 폭포로, 나이아가라 폭포로 데려가는 꿈을 꾸며 산다.










 

 

고왔을 엄마의 손은 이제 거칠고 주름이 많고 뼈마디가 뭉퉁하다.

엄마의 여름은 끝이 난 걸까?
















 

 

내내 뾰족했던 내게 엄마는 선선한 웃음을 지으며

복숭아를 건넸다.
















 


나와 동생이 잠든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아빠를 기다렸을 엄마.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연애 시절 사진.

입꼬리의 점이 예쁘다.
















 

 

엄마는 가끔 혼자 파도를 보러 바다에 간다.

어떤 여름에 꼭 엄마와 함께 이과수 폭포 앞에 설 것이다.
















 

고건녕 ㅣ 번역하고 쓰는 사람

@dexy.koh

 

3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다

평생 직장인으로 살 용기가 없어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동시에 남편과 내 개를 위해 '누군가'가 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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